
James Brown may have invented funk,
but Sly Stone perfected it;
제임스 브라운이 훵크를 만들었을지는 몰라도
슬라이 스톤이 그것을 완벽히 했다.
이 한 문장은 훵크 역사상 가장 큰 화제를 일으킨 그룹
슬라이&더 훼밀리 스톤, 그리고 리더 슬라이 스톤에 대해서
가장 잘 말해주고 있는 문장이다.
훵크의 창시자, 디스코 리듬의 창시자 슬라이 스톤과 그의 그룹 슬라이 & 더 훼밀리 스톤
그들은 67년에 데뷔앨범 어홀뉴씽(A Whole New Thing)을 통해
활동을 시작했으며 단 5장의 정규앨범만을 발표했고,
81년에 팀의 해체를 맞았지만 그 짧은 시간동안 훵크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백인과 흑인, 남자와 여자가 한데 섞인 밴드의 구성만으로도 주목을 받기에 충분한 그룹이었다.
이 엄청난 그룹을 이끈 리더는 달라스에서 태어난 슬라이 스톤, 본명은 실버스타 스튜어트.
그는 성장기에 겪었던 히피 개혁의 새로운 흐름에 공감하여
정치적, 사회적 비판이 담긴 사이키델릭 소울음악을 구사했다.
그의 음악은 히피사조에 어울리는 반항적, 비판적 메세지와 함께
역동적인 폴리리듬을 가지고 있었는데
리드미컬한 그의 음악은 후에 디스코 음악의 시작을 불러일으켰고
그의 음악적 재능은 제임스 브라운과 함께 훵크의 창시자로 지목될 만큼 위대했다.
흑인에 대한 차별이 심하게 존재했던 당시 그들의 앨범판매는 경이로운 수준이었다.
그룹맴버에 백인이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메리트가 있었을지는 모르지만
그들이 기록한 판매고는 다른 흑인가수들에 비교해서 엄청난 대기록이었다.
그러나 70년대 중반이후.
슬라이 스톤은 마약에 찌든 삶을 살아가고
덕분에 그룹활동이 급격한 추락을 겪으면서
결국 81년 해체에 이르게 된다.
마일스 데이비스조차도 펑크를 즐겨들을 당시에
슬라이 스톤의 앨범을 가장 좋아했다는데..
최근 발매된 헌정음반을 통해 윌아엠을 필두로 한 기라성 같은 후배뮤지션들이 재해석한
전설적인 그들의 음악을 다시 만날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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